너와 내가 두 눈을 마주하면
2015년 캄보디아 해외봉사기 (2015.07.01)
캄보디아의 아침은 날마다 낯설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은 늘 우리를 낯설게 했다. 낯선 아침은 곧, 낯선 하루의 시작을 미리 말해주는 듯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캄보디아에서의 매일 밤과 아침은, 하루의 마음을 닮아있었다. 첫째 날 밤과 아침의 열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었고, 아이들과 함께한 뒤에 맞이한 밤과 아침의 가라앉은 공기는, 우리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낯설었던 매일 아침의 온도. 그건 어쩌면 매일 낯설었던 우리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에어컨이 켜진 방안에서 문을 열고 나오자, 나를 맞이한 것은 얼굴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서늘한 방 안의 공기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 바람은 차라리 따뜻함에 가까웠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채로 맞이한 아침이었지만 그 따뜻한 바람 덕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봉사의 둘째 날, 첫째 날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과목을 대폭 수정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된 페인트칠 작업을 좀 더 서두르기로 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그곳에서, 계획은 늘 현실 앞에 무기력했다.
이런저런 설렘과 걱정을 버스에 함께 태우고 우리는 학교로 향했다. 창 밖으로는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하루 만에 익숙해진 그 풍경들 만큼이나 그새 아이들과 친해져 있었다. 단원들 몇몇은 이미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알고 있었고, 우리를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엔 낯섦이 사라지고 대신 익숙함과 반가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섬이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누구 하나 얼굴 찌푸리는 일이 없었다. 아주 어릴 적에 이런 비슷한 풍경을 본 듯도 싶었다. 이제 내 일상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곳에선 이런 모습이 곧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는 일은 하나의 별을 보는 일이었다. 눈동자는 마치 낮에 뜬 별 같았다.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한 채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사랑스러웠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눈망울이었다. 행복은 부와 명예의 정도에 달려있지 않다는 하나마나한 말은 이 곳에선 진리와도 같았다. 아이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자라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들의 눈빛에선 슬픔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카메라는 점점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담아낼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카메라가 찍을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두 번째 만남이 되자 낯을 가린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너무도 선하고 강렬해서, 나는 도저히 맨 눈으로 그들과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비겁하다면 비겁하게도, 나는 거의 대부분 카메라 뒤에 숨어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뷰 파인더 너머의 눈빛은 강렬했고, 나는 매 순간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압도적인 선이었고, 아름다움이었다.

그곳에는 모든 것들이 지나치게 많았다. 콧 속을 금세 까맣게 만드는 모래먼지와, 열대의 태양과,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서로에 대한 마음 같은 것들. 행복은 아름답거나 거창한 것들로 이루어져있지 않았다. 그건 나를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느냐의 문제였다.
우리는 전날의 시행착오를 토대로 좀 더 다양한 교육을 준비했다. 깊고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우리처럼 잠깐 다녀가는 사람들이 해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함께 즐거운 추억을 쌓고 그들이 접해보지 못한 것들을 함께 할 수는 있었다. 여전히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우리를 곧잘 따라 했다. 작고 까만 손을 꼬물대며 종이를 접고, 색을 칠하고, 풀을 붙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무언가를 가르친다기보단,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저마다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었다.





학교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는 작업은, 아이들보단 단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업이 없는 건물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있으면, 먼 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과는 마치 다른 세계인 것처럼 사방이 조용했고, 함께 페인트칠을 하는 단원과의 대화만이 그 공간을 채우곤 했다.
그 시간들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때론 만나온 시간의 양 보다 그 시간들의 농도로 정의되기도 한다는걸 깨닫게했다. 모든 것이 강렬했던 그 7월의 태양 아래서는, 서로를 향한 마음이 짙은 농도로 새겨지곤 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 서로를 향한 단어와 문장들은 길 한번 잃는 법 없이 상대와 나를 고스란히 연결시켜주고 있었다. 불필요한 오해와 소모적인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들이었다. 문득문득, 인생에서 이런 순간들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아이들 뿐 아니라 단원들을 통해서도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왁자지껄하던 학교에서 아이들이 오전 수업을 끝내고 떠나면, 공간엔 적막이 감돌았다. 방금 전까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가득하던 공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적막한 그 공간엔 활기참 대신 평화로움이 자리 잡았다.
내가 있던 서울과는 너무나도 다른 공간이었다. 5시간 남짓의 비행이 소요되는 비교적 가까운 나라였지만, 그곳은 저 멀리 10시간을 넘게 비행해서 가야 하는 유럽의 도시보다도 훨씬 더 먼, 세상의 어느 저편의 공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나는 그곳에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들을 보며, 이렇게나 평화롭고 한가로운 곳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물론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고 또 전쟁 같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의 삶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이 곳에서 이렇게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햇살이 나뭇잎에 반사되어 부서지고, 바람결에 모래 알갱이가 실려와 내 얼굴에 부딪히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햇살도 바람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들이었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잊고 있었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봉사는 내게 무겁고 어려운 의미였지만, 어쩌면 나는 이 곳에 봉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인생을 배우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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