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많은 경계의 사이에서
2015년 캄보디아 해외봉사기 (2015.06.28)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던 어느 날,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들어간 학사 포탈에서 공지사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5년도 글로벌 해외봉사자 모집'
무심코 링크를 눌러본 공지사항에는 2015년도 여름에 학교에서 주관하는 해외봉사 프로그램의 지원자를 모집한다고 적혀있었다. 봉사지역은 캄보디아였다. 그것이 나와 캄보디아와의 첫 만남이었다.

캄보디아. 몇 번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어떤 나라인지, 어디 있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이었다. 모잠비크나 보츠나와, 푸에르토리코 같은 이름만큼이나 낯선 나라였다. 저런 이름들의 나열 속에 캄보디아라는 단어가 있었다한들 내게는 별다르지 않았으리라.
그건 정말로 어떤 의미에선 이국적인 이름이었다. 나중에서야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가 이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앙코르와트와 같은 유명한 관광지가 그 나라를 대표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지난 몇 번의 여행들을 통해 뼈저리게 느껴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앙코르와트는 내게 캄보디아라는 낯선 나라보다는 어쩐지 홍콩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였다.(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이 앙코르와트에서 촬영됐다.)

어떻게 캄보디아를 모를 수 있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더운 날씨에 병적으로 땀을 흘리는 내게 동남아시아는 전혀 흥미를 끌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 곳이 만약 베트남이나 필리핀과 같은 친숙한 이름의 나라였다 한들, 사정은 다르지 않았을 테다.
그런 내가 캄보디아라는 곳을 여행이 아니라 해외봉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순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나라에서 관광지를 돌아보는 일이 내게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앙코르와트를 돌아본들, 수도 프놈펜을 구경 한들, 그건 내가 보고 싶고 알고 싶어 하는 캄보디아가 아니었다. 그건 파리에서 에펠탑을, 런던에서 런던 브릿지를, 우리나라에서 경복궁과 명동을 돌아다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저런 관광 명소들은 파리를, 런던을 여행하는 중에 잠깐 들러 '아 이런 것들이 있구나'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절대 이 도시들을 행선지로 선택하게 하는 목적은 될 수 없었다. 그랬기에 내게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라는 나라를 가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어떤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어 하는 나로써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유적 앙코르와트와 수도 프놈펜의 잘 빠진 쇼핑센터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캄보디아가 아니었고, 그렇게 나는 캄보디아의 민낯을 마주하기 위해 타케오라는 곳으로 가는 해외봉사를 신청했다.
어이없게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여행과 봉사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얼마나 멍청한 소리인가.). 이런 이유로 해외봉사를 신청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내가 마주한 그 나라의 민낯과 내가 엿본 그들의 생활은 내가 가벼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면접을 보고 최종 멤버에 뽑혀 한국에서 몇 차례의 교육을 받았다. 팀별로 모여 캄보디아에서 있을 해외봉사를 대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보는 시간은 겨우 일주일 남짓의 짧은 기간일 뿐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하고 단원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만 빼고.
일주일이라는 기간동안 봉사를 본격적으로 하는 건 겨우 4일 남짓의 시간이었다. 캄보디아를 가기 위해 준비하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신청해놓은 해외봉사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어를 가르쳐준다니. 겨우 4일 동안! 게다가 겨우 며칠 동안 가서 학교를 보수해주는 것이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아주 의미 없는 일은 아닐 테지만, 굶고 있는 사람에게 물고기를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라는 말처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 같은 인간의 값싼 동정에서 비롯된 자기만족의 적선이 아닐 것이라는 온갖 회의감들이 머릿속을 계속 스쳤다.
아이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평생동안 기억될 존재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아직 그들을 민낯으로 대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내 표정과 내 몸짓, 내 말투와 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혹여나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이 봉사활동기의 첫 글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그 아이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신청한 해외봉사가 덜컥 되어버렸을 때, 나는 겨우 그런 이유로 봉사활동을 신청한 나 자신의 선택을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선택했던 이유는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해맑은 아이들을 보고 특별한 경험을 쌓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쉽게 말해서 내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였다.
교육을 받으면서, 해외봉사를 준비하면서 내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스쳤다. 지금도 캄보디아에 같이 갔던 단원들은 아마 이 당시의 내가 이런 생각들을 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테다.
그렇게 출국날이 다가왔다.
화장실도, 잠자리도, 욕실도. 모든 것들이 까다로운 내가 이 낯설고 열악한 땅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전날 나는 잠을 설쳤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나는 수십 번도 더 캐리어를 확인하며 빼놓은 것은 없는지 확인했다. 어쨌든 다른 의미로, 아이들을 보러 가는 길은 설레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고, 나는 캄보디아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캄보디아 해외봉사는 학생신분으로써의 마지막 활동이었다. 나는 이 당시 취직이 되어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이미 신청해놓은 활동이었기에 회사에서도 양해를 받아 놓은 상황이었다.
학생의 경계와 직장인의 경계, 숭고한 가치와 속물적인 생각의 경계, 내 개인의 위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희미하게 의식되고 있는 희생정신 사이의 경계.
어쩌면 나는 그 모든 경계의 사이에 위태롭게 발을 딛고 서서 캄보디아로 향했는지도 모르겠다.
캄보디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었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비행기는 다섯 시간 반 가량을 날았다. 비행기 안에서 어색함을 떨쳐내지 못한 나는 옆 자리 단원들과 섞이지 못하고 혼자 책을 읽었다. 낮에 한국을 떠난 비행기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도착했다. 캄보디아와 한국 사이에는 두 시간의 시차가 존재했다.
시차는 여전히 내겐 낯선 개념이다. 그래서 내가 시차적 응이 빠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가장 절실히 들 때는 입국 수속을 밟고 있을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 핸드폰의 시계를 바꾸며 내가 떠나온 나라의 시간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내가 떠나온 거리 만큼의 간격을 손목시계의 바늘을 돌려 채워 넣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내가 먼 곳으로 떠나왔음을 실감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끝낸 뒤 밖으로 나오자, 짧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숨을 들이쉬자 살면서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짙은 농도의 습도가 내 폐 속으로 들어왔다. 캄보디아의 공기는 덥고 습했다. 여행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비행기 혹은 기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 곳의 냄새로 그 장소의 첫인상을 각인하곤 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캄보디아는 공기 중에 가득 찬 눅눅하고 농도 짙은 수증기의 냄새가 가득한 나라였다.
그렇게 낯선 공기에 적응하며 단원들이 전부 모이자, 우리는 한국에서 챙겨온 짐들을 챙겨 공항을 나섰다. 첫날은 수도 프놈펜에서 하루를 묵기로 되어있었다. 낯선 곳의 낯선 공기, 그리고 낯선 사람들. 묘하게 흥분되고 설레는 마음을 숨긴 채 버스에 짐을 실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버스로 30분가량이 걸렸다.

숙소로 가는 길에 본 캄보디아의 밤은 고요했고, 무질서했다. 거리엔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건물은 허름했다. 한국에서라면 노숙자들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법한 쓰레기 더미를, 딱 봐도 초등학생쯤 되는 어린아이들이 뒤지고 있었다. 그렇게 캄보디아의 밤은, 낯설었다.
심난한 캄보디아의 밤거리를 통과해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깔끔하고, 조용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용할 수 없을법한 호텔이라는 직감이 바로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한국돈으로 1박에 5만 원이 넘는 곳이었다. 하루를 자고 난 뒤 다음날 봉사지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해외봉사를 하러 와서 이런 곳에 묵어도 되는 걸까 하고 또 한번 괴리감에 휩싸였다. 캄보디아는 내게 시험문제를 끊임없이 쥐어주는 땅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과 처음 맡는 냄새, 처음 듣는 개코도마뱀의 울음소리까지. 온통 낯선 그 곳에서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그건 이국적이라기보단 생경함에 가까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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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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