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땅, 캄보디아
2015년 캄보디아 해외봉사기 (2015.06.29)
호텔방은 캄보디아의 무더위 속에서 마치 한 가운데 떠 있는 얼음섬 같았다. 창문을 열면 예의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폐 속을 훅-하고 습격했지만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은 약간의 한기가 돌 정도였다. 그 섬 같은 방 속에서 나는 캄보디아 상류층 사람들의 삶이 서민들과 얼마나 유리되어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했다. 빈부격차가 심한 가난한 나라에서 나는, 쉽게 상류층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건 약간의 죄책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 감정이 값싼 연민이나 죄책감은 아닐지 경계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여전히 내게 정리되지 않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봉사지역인 타케오로 가기 전, 우리는 프놈펜 국립 박물관을 들른 뒤 시내에서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게 우리가 프놈펜에서 마지막으로 누릴 호화이자 사치였다(라고 생각했지만 봉사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우리는 호화스러웠다).
프놈펜 국립박물관은 붉은색의 벽돌과 화려한 지붕모양이 무척 인상적인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며 스치듯이 봤던 캄보디아 왕궁의 건물도 이처럼 화려하게 생겼던 것을 떠올리며, 이런 건물의 양식이 캄보디아의 전통 양식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특이한 모습의 건물을 제외하고 프놈펜 국립 박물관은 전혀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하는 곳이었다.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내게 박물관은 미안하게도 그저 오래된 동상과 이 빠진 접시, 낡은 잡동사니들의 보관소일 뿐이었다. 그렇게 보는 둥 마는 둥 박물관 내부를 슥-한번 둘러보니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금세 흥미가 떨어진 나는 이내 국립 박물관의 바깥에 있는 정원으로 나와 캄보디아의 작열하는 햇살을 구경하는 쪽을 택했다. 캄보디아의 태양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기세로 맹렬하게 내리쬐고 있었고, 그건 앞으로 4일 동안 내가 익숙해져야 할 잔인한 7월의 태양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길고도 지루했던(그리고 의미조차 없었던) 박물관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학교 측에서 예약해두었다는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꽤나 고급진 축에 속할 레스토랑이었다. 우리가 식사하는 옆에서는 캄보디아의 한 여자가 어떤 음악에 맞춰 전통춤(아마도)을 추고 있었다. 민망하고도, 색다른 풍경이었다. 만약 동남아시아의 이국적인 풍경들이 이런 것들이라면, 아마 다시는 관광으로 올 일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학교와 봉사단체에서 베풀어준 호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으나(이제부터 개고생이니까 즐겨두라던 말이 빈말은 아니었으니) 프놈펜의 국립 박물관도, 그리고 (캄보디아 기준으로) 상당히 비싸 보이는 맛있는 식사도 나는 즐기지 못했다. 다른 단원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더 양심적이라거나 더 숭고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오히려, 내가 봉사활동이라는 행위 자체의 속성에 너무 얽매여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전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캄보디아로 봉사활동을 오기로 한 목적이 순수하게 아이들을 가르쳐주고 도와주고픈 마음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찍어보고 싶었고, 그곳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랬기에 역설적이게도, 나는 봉사활동이라는 행위 자체의 전통적인 속성(고귀함이나 숭고함 같은)에 더 집착하고 있었다. 그건 한국에서부터 내내 찔려왔던 내 양심의 가책이 빚어낸 참사이기도 했다.
또한 가슴 한 구석에서 찜찜함을 지우지 못했던 건 뭐랄까, 이렇게 돈을 쓰고 우리가 좋은 환경에서 보낼 수 있게 노력해주는 그 투자들을(비록 몇 푼 안 되는 돈일지라도) 받을 만큼 내가 앞으로 하게 될 봉사활동이 가치 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남겨둔 채 나는 단원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봉사지역으로 향했다.

프놈펜에서 외곽으로 출발한지 30분쯤 됐을까, 창밖의 풍경에서 문명의 흔적은 그새 지워져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끝없는 초원, 그리고 아무 근심 없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이었다.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 끊임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에 질려버린 나는 이내 창밖의 풍경에 흥미를 잃곤 잠들어버렸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에서 깨어났을 때, 도착한 곳은 우리가 앞으로 봉사하게 될 타케오 지역의 뚜올삼보 초등학교였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어떤 느낌일까? 해외봉사를 가기로 결정된 순간부터 학교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혼자서 수도 없이 상상해왔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어떤 면에선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했다. 뭐랄까, 한국에서도 익히 봐왔던 초등학교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건물이 좀 낙후됐고, 날씨가 좀 많이 덥긴 했지만 캄보디아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한국에서 아이들을 마주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청 처절하게 불쌍하거나 한 모습을 상상한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기운 빠지는 풍경을 생각했던 나는 내가 마주한 아이들의 눈망울 앞에서 다시 한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정관념이란 건 이래서 무섭다. 아무리 행복의 주요 지표가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백날 떠든다 한들, 실제로 마주하고 눈 앞에서 마주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은연중에 '이 아이들은 돈 없고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있고, 내가 봉사해주러 가는 아이들이니 불쌍할 것이다.'하고 생각했던 내게, 그들은 첫 만남부터 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며 그 선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꾸짖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가득 에워싸던 아이들, 창 밖에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들, 수줍은 듯 눈을 마주치면 피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친구 뒤에 숨으면서도 수줍게 미소 짓던 아이들. 그곳은 눈길 닿는 곳마다 그들의 새하얀 마음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의 미소는 그들 위에 떠 있는 태양빛을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건, 경이롭거나 색다르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이들과의 짧은 만남을 가지고, 보수하게 될 학교의 전반적인 모습을 둘러본 우리는 본격적으로 시작될 내일의 봉사활동을 기약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아주 잠깐 동안 만났을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가 내리고 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내 우리를 향해 밝게 웃어주고 있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는 우리도 결국 평등한 존재였다.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눈을 보고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했다.
버스에 올라타기 직전 사진을 찍기 위해 뒤를 돌아 셔터를 눌렀을 때, 나는 뷰파인더 속의 풍경에 가슴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꼈다. 뷰 파인더 속에 잡힌 어린 소녀의 미소와 눈빛이 카메라를 통해 내 눈에 닿았을 때, 나는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동을 받았다. 아이들은 내게 벌써부터 편견 없는 캄보디아의 진짜 모습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곳의 공기는 선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결국 아이들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그들의 어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내게 숨김없이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꾸며내지 않은 투명한 미소로 내게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행복이 바로 이런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그저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찍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처음 접해보는 캄보디아의 음식들을 먹고 난 뒤, 우리는 간단한 회의를 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 줄 커리큘럼에 대한 회의였다. 단원들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들떠있었다. 나처럼 상상으로만 해 왔던 아이들과의 첫 만남은 단원들에게도 분명 나 만큼, 나보다 더 인상적이었으리라. 그들을 보며 분명 내 표정 역시 저런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회의는 열정적이었고 모두들 아까 본 아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우리는 내일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들떠 잠이 들었다. 어느덧 나도 캄보디아에 오기 전 생각했던 수 많은 생각들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내일부터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뿐이었다.
그 날 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가 있던 숙소의 전력이 불안정해 전기가 끊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덕분에 우리는 캄보디아의 첫날,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한증막에 들어온 듯 땀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우리나라와는 정말 비교되지 않는 더위를 경험했다. 문을 열어놓으면 벌레가 들이닥쳐 문도 열 수 없었던 그 날 밤, 나는 내가 아직 캄보디아라는 땅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해야만 했다. 방의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너무 더워 잠시 밖으로 나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밖에서 모기장을 쳐 놓고 자고 있는 숙소 관리인들의 모습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인지에 대해 그들과 내 모습을 비교하며 생각했다.
그러나 머릿속에 온통 '덥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밤, 캄보디아에 오기 전부터 시작된 복잡했던 내 생각들은 그날 밤 오히려 명쾌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오로지 더위만을 생각하던 그 순간, 결국 내가 했던 모든 생각들은 그들처럼 이 땅의 환경에 적응한 뒤에라야 해야 하는 것들임을 깨달았다. 그 땅에 적응하지 못한 자의 고민은 결국 사치였고, 허위였다. 이 땅이 내게 건넨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곳에 적응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더위 속에서, 이렇게 잠에 든다면 다음날 제대로 봉사활동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나는 선 잠에 들었다.
그 해 여름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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