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무 데나’는 어디야
엄마와의 유럽 여행 – France, Paris. Day 2(1)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맞는 첫날 아침, 나는 엄마가 아침을 준비하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벌써 세면을 마친 엄마는 욕실에서 나와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었다. 커피머신이 지이잉-소리를 냈고, 캡슐커피 특유의 텁텁하고 고소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엄만 시차 적응도 없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발견하곤 "일어났어?" 하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눈도 제대로 뜨지 않은 채 나는 엄마에게 오늘은 어디를 가고 싶냐며 물었다. 이번에도 '아무 데나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행 초반 엄마의 머릿속엔 오로지 가우디만 가득했다. 가우디 하나만 바라보며 온 유럽여행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 데나 괜찮다는 엄마의 답변을 들을 때마다, 나는 전체 여행의 4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바르셀로나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에서의 일정을 꾸려나갈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했다. 당연히 아무 데나 괜찮을 리가 없는데!!! 그리고 슬픈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틀리지를 않아서, 나는 여행에서 가장 함께 다니기 힘든 일행이 '아무 데나 괜찮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엄마와의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엄마가 다시 가고 싶은 도시 1순위로 파리를 꼽지만, 그땐 그저 가우디가 있는 바르셀로나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르는 도시에 불과했다. 가면 좋지만 안 가도 그만인 곳을 여행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보여줘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냥 내가 다시 가고 싶었던 오르세 미술관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파리를 방문하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장소는 단연 미술관이었다. 오르세는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엄마에게도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행선지가 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내게는 한 번 들어가면 세네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엄마는 내 제안을 듣자마자 저 유명한 고흐와 모네, 드가 등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거냐며 설레 하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해외여행을 온 엄마의 긴장은 늘 설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숙소를 나선 우리는 가볍게 근처를 산책하며 이동했다. 낯선 도시에서는 많이 걸을수록 도시에 조금 더 빨리, 그리고 쉽게 녹아든다. 엄마는 거리를 걷는 내내 낯선 도시의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가 처음으로 눈에 담아보는 외국의 풍경이었다. 그렇게 알렉상드르 다리를 건너고 튈르리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엄마는 자신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과 지금껏 살면서 습득했던 지식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엄마의 그런 모습은 자식인 내게 신선한 즐거웠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는 엄마에게서 늘 많은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콤플렉스 때문에 입학했던 방송통신대학이었지만, 아마 대학을 가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배우고 싶은 어른이었을 거라고 자신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는 금세 오르세 미술관에 도착했다. 미술관 앞에서는 <La peinture américaine des années 1930>라는 타이틀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미국 회화 특별전을 하고 있는 듯했다. 찾아보니 엄마와 내가 애정 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전시되고 있는 듯했다. 다음날엔 오랑주리를 가야겠다는 이야기를 엄마와 주고받으며 오르세 안으로 입장했다. 여행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기대감을 안은 채 오르세에 들어선 엄마는 웅장한 규모의 미술관에 감탄하며 계속해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찍었다. 사진 속 엄마는 얼굴에 온통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와 여행을 떠나며 내가 했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바로 엄마의 체력이었다. 엄마가 과연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하는 배낭여행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리 질문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그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엄마의 체력은 놀라우리만치 대단해서, 오히려 중간중간 내가 쉬느라 엄마를 멈춰 세워야 할 정도였다. 오르세 같이 커다란 미술관을 네 시간 동안 감상하고 있으면 나조차도 다리며 허리며 안 아픈 곳이 없는데, 엄마에게는 그런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낯선 도시에 왔다는 긴장감과 새로운 풍경들을 눈 앞에서 보고 있다는 설렘이 합쳐진 흥분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엄마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보기 좋았다. 얼핏 바라본 엄마는 고흐와 모네의 그림들 앞에서 입술을 잔뜩 오므리고 집중하고 있었다. 그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엄마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오르세에서 네 시간가량 쉴 새 없이 그림을 구경한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서 파리 시내를 천천히 걸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이끌고 Les Deux Magots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파리의 여느 카페가 그렇듯이, Les Deux Magots 역시 파리를 무대로 활동했던 다양한 문인들이 방문했다는 이유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곳이었다. 마침 카페에서 엄마가 앉은 의자에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미라보 다리에서 사랑을 노래하던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 구절을 낮게 중얼거렸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슬픔 뒤에 온다는 것을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이 도시 곳곳에는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져 있다. 파리의 진정한 매력은 골목마다 숨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들 속에서 나온다. 문득 나중에 파리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기욤 아폴리네르가 앉았었고, 엄마와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어떤 이와 함께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벌써 3년도 더 지난 여행이긴 하지만,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와의 여행기를 가열차게 한 번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많이 늦었네요. 망할 구직활동.
엄마는 유럽의 종달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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