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초와 노트르담

엄마와의 유럽 여행 – France, Paris. Day 2(2)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노트르담 성당으로 향했다. 파리의 가장 좋은 점은 이렇듯 걸어서 굵직한 관광지들을 전부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여행지에서 좋았던 순간들은 의외로 길 위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에 빚을 지고 있다. 차를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편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생각 또한 덩달아서 빠르게 스쳐 지나가버린다. 도시의 인상은 그 생각들을 따라 흐릿한 잔상으로만 기억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외국의 낯선 거리를 걷게 된다면, 우리 옆을 스치는 풍경은 매번 새로운 자극을 주고,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된다. 물론 제일 좋은 점은 한 푼이라도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겠지만.

파리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앞을 둘러보는 사람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떼 섬 앞에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서점인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있다. 자연스럽게 노트르담을 가기 전에 서점을 지나게 되었는데, 3년 만에 서점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처음 유럽여행을 왔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 촬영지를 따라 한 없이 파리 골목길을 누볐던 2015년 새해 첫날의 기억이 삽시간에 눈 앞에 펼쳐졌다. <비포 선셋>의 촬영지라는 이야기를 건네며 엄마에게 내 첫 책에 대해 말하자, 엄마에게서는 비포 시리즈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는 싱거운 답변만 돌아왔다. 어차피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는 파리의 영미문학 서점이었으므로 우리는 서점에 들어가진 않은 채 겉에서만 구경한 뒤 다시 노트르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트르담 성당 앞은 이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광장에는 성당에서 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천주교 신자인 엄마는 노트르담 성당의 내부를 구석구석 훑으며 구경하다가, 갑자기 내게 남는 유로가 있냐고 물어왔다. 얼마나 필요하냐고 묻자 동전만 조금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동전 몇 개를 지갑에서 찾아서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그 동전으로 양초를 사 와 다른 초가 있는 곳 옆에 함께 봉헌했다. 나는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자그마한 엄마의 옆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해 떠올리며, 엄마가 신에게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무슨 기도나 속죄 같은걸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했다. 외할머니의 죽음 이후 신을 믿지 않게 된 나와는 달리 엄마는 그 날 이후로 더 열심히 성당을 나갔다. 마치 당신 자신이 잘못해 그 일이 벌어지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그래선지 나는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이 어쩐지 신에게 속죄를 구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사실 우리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여행이 끝나고 난 뒤에 별 다른 기억이 없었던 노트르담 성당에서의 그 날이 인상 깊은 하루로 바뀌는 계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노트르담 성당이 안타까운 화재에 휩싸였다는 소식이었다. 뉴스를 접한 엄마는 아침부터 침대에서 울상을 지었고, 나 역시 파리를 갈 때마다 의도했든 아니었든 마주쳤던 커다란 성당이 불길에 휩싸인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파리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노트르담이 화재를 입기 전에 그곳에 가보긴 했네-하는 말과 함께.

노트르담 성당의 일화가 아니라도,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한때 내가 있었던 곳의 풍경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순간들이 가끔씩 있다. 마치 꿈처럼 희미한 잔상으로만 기억되는 시간들. 그 기억들은 오로지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진과 영상만으로 증명될 뿐이다. 그러나 '사진이 남는 것'이라는 말과는 달리 가끔은 그 '남아있음'이라는 사실 자체가 못마땅할 때도 있다. 과거 행복했던 순간의 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과거의 시간 속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아서, 지나가버린 순간을 떠올릴 수 없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회한은 사람을 못 견디게 슬퍼지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슬픔 속 행복을 슬픔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까.

엄마와 나는 그날 노트르담을 구경하고 나온 뒤 다시 파리 시내를 걸어 샹젤리제 대로로 향했다. 반짝이는 샹젤리제를 걷고 개선문을 올라 엄마와 함께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샹젤리제 대로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지난 첫 여행 때의 파리를 떠올렸다.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파리에 외따로 놓인 고독한 여행자였다. 새해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파리의 들뜸은 오히려 나를 더 차분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센 강을 따라 흐르는 유람선 위에서 한참 동안 강바람을 맞은 내 몸은 얼어붙어 있었고, 김치찌개 한 숟갈이 간절히 생각나는 외로운 밤이었다. 똑같이 늦은 밤, 자동차로 북적이는 샹젤리제 대로를 바라보며 똑같이 추위에 떨고 있었지만 웃음이 나왔다. 옆에서 춥다는 엄마의 볼멘소리 때문이었다. 때로는 같은 장소에 여러 번 오는 여행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개선문에서 내려온 엄마는 내게 오늘 일정의 마지막으로 꼭 백화점 식품관에 들러봐야겠다며 안내를 요구했다. 처음으로 엄마가 가고 싶어 하는 행선지가 백화점 식품관이라는 사실에 '엄마도 참 엄마다'싶은 생각을 하며 구글 지도를 검색했다. 아마 봉 마쉐의 식품관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곳에서 엄마는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친척 이모들과 동생에게 사다 줄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기가 차서 한껏 볼멘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게랑드 소금과 마리아주 프레르 홍차 앞에서 가족에게 무엇을 사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물론 남들에게 줄 물건만 고르고 있지는 않았지만, 엄마 좋자고 온 여행에서 여전히 자신의 언니들과 자식 생각에 여념이 없는 그 모습에 나는 기가 찼다. 세상 온갖 쿨한 척 다 하면서 '야 넌 결혼하지 마'라는 말도 아들에게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가, 정작 당신 가족에게는 저렇게 헌신적일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엄마에게 못한 기억들만 떠올라서 불편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래서 나는 마지막엔 부득부득 우겨서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을 사 와서 숙소에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난 왜 '우리 엄마'라는 사람 앞에서 한 없이 어린 존재가 되어버리는 걸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여행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런 일이 적었다는 점이었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로, 엄마는 가끔 다시 파리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당신이 가고 싶어 했던 바르셀로나보다 오히려 파리가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TV에 파리의 모습이 나오면, 엄마는 마치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자신이 보고 온 파리의 모습들을 띄워놓고 상상에 빠져 있는 듯이 보였다. 여행을 가기 전 까지는 엄마에게 아무런 인상도 줄 수 없었던 파리가,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로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여행이 주는 예측 불가능의 매력을 떠올렸다. 막상 기대했던 것들에서 아쉬움을 느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에서 예상치 못한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일. 집에만 있던 엄마는 그렇게 여행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그게 바로 여행에서 지지고 볶고 타지에서도 가족을 생각해 내 복장을 터지게 만들었던 엄마가 유럽여행을 통해 얻게 된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이렇게 여행기를 쓰고 있으니 다시 여행이 가고 싶어지네요.

엄마는 유럽의 종달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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