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의 마음가짐
엄마와 나의 여행, Interlude
2016년의 어느 날, 나는 4학년 2학기 마지막 출석수업을 들으러 가는 엄마를 따라 집을 나섰다.
방송통신대학교는 대부분의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지만, 오프라인으로 출석해 강의를 듣는 수업도 학기마다 종종 있다. 시험 역시 대부분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모두 엄마가 방통대를 다니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다.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곧 있을 시험공부에 열을 올리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유인물을 보고 있는 엄마는 그냥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집중도 잘 안될 대중교통 안에서 활자 하나 더 머릿속에 구겨 넣어 보겠다고 애쓰는 모습은 "엄마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수업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서, 이른 점심을 먹으려 학교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파니니와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가볍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정욱아 우리 유럽여행 있잖아, 아무래도 좀 마음에 걸려."
"왜?"
"그냥… 아빠 혼자 두고 여행 가는 것도 미안하고, 정민이도 신경 쓰이고… 돈도 좀 그렇고.. 아롱이도 그렇고(아롱이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다)."
예상치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역시나 여행 전부터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뒤에 아롱이는 왜 황급히 끼워 넣는지, 참.
나는 엄마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온 가족이 다 함께 유럽여행을 갈 상황도 아니었고, 아빠와 동생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엄마와 내가 단 둘이 유럽여행을 가는 일은 그래서 당연하게 보였다. 그러나 역시 엄마와 아들의 생각 구조는 같지 않나 보다. 아무리 당연하게 느껴져도 혼자서만 좋은 걸 한다는 엄마와 아내로서의 마음의 부채는 엄마를 여행 전부터 괴롭히고 있었다. 나 역시 여행을 앞두고 남은 가족 구성원들에게 은근한 마음의 부채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이미 일종의 자기 합리화를 끝낸 상태였는데, 엄마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직을 위해 다니던 회사에 퇴사를 통보한 나는 이미 엄마와의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까지 거의 끝낸 상태였다. 퇴직금까지 염두에 둔 소비였기에 돌이킬 수는 없었다. 방법이 없지는 않았지만 돈도 아깝고, 취소하기에도 귀찮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나는 엄마게 이미 전부 예약해두었으니 안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일단은 알겠다'라는 모호한 말을 남겼다. 내심 미리 예약 해두길 잘했다 싶었다. 여행을 앞두고 만사가 귀찮아질 때 마음을 다잡는 일에는 이미 예매해둔 비행기표만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수업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카페를 나와 엄마의 학교로 향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등교하는 엄마의 모습이라니.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그건 앞으로 엄마와 나와의 여행에 있어서 작은 복선에 가까웠다. 엄마와의 여행에서 나는 어른이 된 자식과 나이가 든 부모 사이의 역할이 역전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자식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고, 부모는 어느새 낯선 세상 앞에 다시 던져진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가 교실에 들어가 필기구를 챙기고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며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일은 무척 생소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즐겁고 재밌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를 '정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반 사람들의 목소리와, 가뜩이나 작은 엄마가 긴장해서 더 작아보는 일은 낯설어서 즐거운 순간들이었다. 나는 엄마를 놀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가까스로 억누르며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물론, 집에 돌아온 다음에는 엄마에게 깐족거리기는 했지만.




엄마는 마지막 출석수업을 앞두고 섭섭하다기보다는 시원한 듯이 보였다. 숙원사업을 해치운 사람의 속 시원함이 저런 모습일까 싶은 표정이었다. 생각해보면 출석수업에 나가느라 매번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는 일 때문에 늘 피곤했을 테니, 일견 수긍이 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후련한 듯이 보이는 엄마를 교실에 남겨두고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건 엄마가 가정에 묶여 한 번도 해외여행을 떠나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엄마를 둔 채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일은 늘 내게 일종의 짐이자 부채였다. 물론 아빠 역시 젊은 시절 쿠웨이트에 돈을 벌러 간 일을 제외하고는 해외에 나가 본 적은 없었지만, 아빠는 크레인 기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길게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도 자기 합리화일 수 있겠지만.
때문에 나는 부채감을 덜기 위한 이기적인 마음으로 엄마와의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가 수업에서 배우고 난 뒤 늘 노래를 불렀던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러 다니고, 내가 감명받았던 유럽이라는 곳을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의 걱정은 출국 전날까지도 계속됐고, 유럽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가족을 두고 평생 이틀 이상 집을 떠나본 적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집과 가족을 떠나 오랜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뒤늦게 글을 쓰며 그때 엄마의 감정을 상상해본다.
나는 엄마의 비행기표와 내 비행기표, 여행을 떠날 때 챙겨야 할 각종 짐들을 엄마에게 잘 건넨 뒤 먼저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먼저 더블린에서 4일을 보낸 뒤, 파리에서 엄마와 합류할 예정이었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열 시간도 넘는 시간을 비행해 날아올 엄마에 대한 걱정은 그렇게 더블린에서의 시간 내내 나를 은밀하게 쫓아다녔다. 그렇게 부모의 보호자가 된 자식이라는 내 인생의 첫 경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는 유럽의 종달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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